미국 내에서도 동물의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샌디에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은 라호야에서 약 20분거리.
우린 호텔 숙박비에 포함 된 아침 식사를 먹고 바로 출발하기로 계획. 기막히는 위치에 비해 낙후된 시설이 기가 차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라, 전혀 기대치 않았음에 비해, 건물 옥상 야외에 상을 차려 놓고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는 의외로 만족.
라호야에 바로 붙은 우리 호텔의 또 하나의 장점은, 아침에 이색적으로 물개 우는 소리를 들으며 깰 수 있다는거! 그에 수반 되는 단점은 한 여섯시쯤부터 물개 우는 소리 때문에 안 깰 수가 없다는거 … 덕분에 우린 셋다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일찍 깨서 전반적으로 예민한 상태로 아침을 먹고 동물원으로 출발~
동물원에 도착해서,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도 정문 바로 옆에 쉽게 한 우리. 그런데, 목적지가 동물원임을 깨달은 후로는 급 정색하며 싫어하는 알 수 없는 개비정 …
개비정: [개비정]은 안 갈래. 무섭잖아. 엄마 아빠만 가. 안 볼꺼야 …
더 어렸을 때는 잘 만 다니던 동물원을, 다 커 갖고서는 뭐가 무섭다는 건지 ;;; 그저 밖을 구경하며 다니는 투어 버스에서도 눈 가리고 다니면서 아무 것도 안 보는 개비정.
아빠: 동물은 구경만 하는거야. [개비정]한테 못 와 …
개비정: (절레절레) 집에 언제 가?
아빠: …
그렇게, 실컷 큰 맘 먹고 계획해서 온 동물원의 초반부터 분위기를 사로잡아 휴지통에 집어 던지는 개비정을 보며, 나와 훌.절.엄.™은 가볍게 무시하고 눈 감은 채로 유모차에 태워서 끌고 다니며 우리 둘이서라도 즐기기로 함.
분노하는 내 맘을 삭히며 좀 돌아 다니다가, 잠시 화장실 다녀 온 사이, 훌.절.엄.(rm)과 개비정 사이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개비정: 베이비만 볼거야
아빠: … ???
개비정: 왜냐면 … ummmm1 … 베이비는 귀엽잖아!
조금은 마음을 열었는지, 걷기도 하고 아주 조금씩 구경도 하기 시작한 개비정. 잘 노는가 싶을 즈음에 한 번씩
개비정: 집에 언제 가?
하며 뒷목 잡게 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눈감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님.
기쁨, 슬픔, 분노를 반복하며 넓디 넓은 동물원을 몇 바퀴 돌다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 우린 동물원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발보아 공원 구경하러 향함.
동물원에서 그렇게 속을 썩이던 개비정, 장난감 동물 몇 마리 들어있는 세트를 사줬는데, 공원에 도착하더니 다 꺼내서 펼쳐 놓고는,
개비정: 아빠~ [개비정]은 코끼리도 보고 기린도 보고, 원숭이도 보고 … ummm … 또 뭐 봤더라?
누가 보면 동물원에서 엄청 신나게 놀다 온줄 알듯 …
그래도 모처럼 놀러와쓰니, 한 끼도 헛으로 먹진 않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저녁은 “스테이크 같이 두꺼운 회”로 유명한 맛집, 스시 오타에서 먹으로 향했다.
원래 워낙 인기는 많고, 자리는 적은 곳이라,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한다는데, 우린 전날부터 예약을 하려고 아무리 전화를 해대도 도무지 전화를 받질 않는거;;; 그래서, 가게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무작정 가봤더니, 한 시간 내에 다 먹고 나올 수 있다면 자리가 있다는거! 어차피 개비정 때문에 식당에 한 시간 넘게 앉아있지 못하는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회 떠먹으며 하루를 무겁게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