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 1/4 - 라호야

여름 인턴의 끝, 그리고 가을 학기 랩 복귀를 앞 두고 일주일 간 다 같이 샌디에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 첫 목적지는, 라호야 해변!

집에서 운전해서 가면 약 8 시간 거리인지라 … 못 갈 건 아니지만, 또 함부로 갈 거리는 아닌 것 같아 오랜 고민 끝에 우린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결정!

다만, 구림의 극한을 수 차례 거듭 보여준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피하고자, 굳이 산호세 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으로 떠났다.

우버 타고 공항으로~

우버 타고 공항으로~

이제 비행기 타는건 선수가 된 개비정, 한 시간도 안 되는 비행인데, 이륙 하기가 무섭게

개비정: 배고프다. 밥은 언제 나와?

아빠: 이건 잠깐만 타는 비행기라서 밥 안 줘.

개비정: 이모가 주스는 주지 않아?

아빠: 아 … 그건 좀 있다가 올거 …

개비정: 그리고 사 먹을 수 있잖아. 샌드위치 아니면 치즈 크래커?

아빠: … ;;; [개비정] 가방에 사탕 있어. 그거 먹어.

우리 동네도 날씨가 보통 좋은게 아닌데, 샌디에고는 그 이상으로 맑고 따듯한 날씨.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해변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해변

최대한 해변에 가까운 숙소를 잡아 본게 라호야 코브. 적잖이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에, 나름대로의 레노베이션을 한다고 했지만, 어지간 해서는 숨길 수 없는 낡은 화장실/배관/건물 구조 … 하지만 위치 하나는 끝내줌.

도착해서 짐 풀어 놓고 바로 동네 산책~

화사한 동네 나들이

화사한 동네 나들이

해변이 코 앞이긴 했으나, 일단 모래 사장에 도착하면 개비정 끌고 나오기가 쉽지 않으리란 걸 체득한 나와 훌.절.엄.™은, 해변을 등지고 맛있는 점심을 찾아 “시내”를 향함.

작은 시골 해변 + 부자 동네 휴양지에 걸맞는 라호야 시내는 아기자기한 식당/카페들과 으리으리한 부동산/미술 작품 전시관1이 오묘하게 섞인 분위기.

길거리 피아니스트 개비정

길거리 피아니스트 개비정

멕시코 국경에 바로 붙어 있어서, 멕시코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라호야! … 에서 우린 피자가 먹고 싶다는 개비정을 위해, 굳이 이태리 식당을 찾아서 감. 근데, 이 것이, 실컷 지 때문에 이태리 식당와서 피자 시켰더니 잘 먹지도 않고

개비정: 딴거 먹을래.

아빠: (이 악 물고 이쁜 목소리로) 딴거 뭐?

개비정: 몰라2. 아빠가 알아. 딴거.

아빠: 과자랑 아이스크림은 안되.

개비정: 아이스크림?

아빠: 안된다고 … 너 때문에 엄마 아빠가 피자 시켰 …

개비정: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자.

아빠: 피자 다 먹고 말씀 잘 들으면 생각해볼게.

개비정: (삐짐)

그렇게 분노를 삭혀가며 실랑이 밥을 먹여 놓고 … 부모로서 나의 자질을 의심하며 향한 곳은 보보이 젤라또! 사실, 별 생각 없이, 식당에서 바다로 향하는 길에 있는, Yelp! 평이 괜찮은 집인 것 같아 지나가는 길에 들렀는데, 그 맛은 정말 지금껏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 으뜸!

특히나, 개비 정이 고른 딸기맛이 가장 맛있었는데, 다 같이 한 컵에 담아 놓고 나눠 먹던 중, 갑자기

개비정: (스푼으로 딸기맛을 긁어 모으며) 딸기맛은 [개비정]이 골랐으니까 이제 [개비정]만 먹을게. 엄마랑 아빠는 엄마랑 아빠가 고른거 먹어. 아라찌?

아빠: 아빠도 딸기맛 먹고 싶은데?

개비정: 근데 벌써 많이 먹었잖아 …

아빠: 알았어, 그럼. 딸기맛 너 다 먹어~

( … 두어 숟가락 후 … )

개비정: (딸기맛 한 숟가락 내밀며) 먹을래? 이거 먹어봐.

아빠: 땡큐~

개비정: [개비정] 나이스 하지?

딸기맛만 먹는 개비정

딸기맛만 먹는 개비정

라호야 해변의 명물은 역시,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물개(바다 표범? 사자?)의 무리. 아이스크림을 다 해치우고 물개들이 우는 소리를 따라 바닷가로 향해보니 …

고등어 마냥 해변에서 일광욕 중인 물개들

고등어 마냥 해변에서 일광욕 중인 물개들

해변으로 내려 간 훌.절.엄.™은, 바로 앞에서 잠든 털복숭이 아기 물개도 보며 몹시 신난 중, 우리 개비정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

개비정: 아니야!!!! 안 갈꺼야!!!!

아빠: 귀여운 건데? 우리 샌프란시스코 피어에서도 본 …

개비정: 싫어!!!! 안 갈거야!!!!

아빠: 아빠 손 잡고 갈까?

개비정: (절레절레)

아빠: 아빠 안고 갈까?

개비정: (격하게 절레절레)

알 수 없는 겁쟁이 개비정

알 수 없는 겁쟁이 개비정

그리하여 개비정은 언덕 꼭대기 먼 발치에서만 잠깐 구경하다가 물개랑은 거리가 좀 있는 다음 해변가로 고고씽. 바다도 그닥 좋아하지 않고, 해변에 동물들도 별로 안 좋아하고, 파도는 기겁하며 싫어하는 우리 개비정이 해변에만 가면 넉 놓고 하는게 …

조개 껍데기 찾는 중

조개 껍데기 찾는 중

별로 있지도 않은 조개 껍데기—그것도 정말 손톱만하게 깨진 조각들—를 모아보겠다고, 한 시간 가까이 (행여나 파도가 지한테까지 갑자기 올까봐 바다 눈치 봐가며) 모래에 주저앉아 뒤척인 개비정. 아무리 내 딸이지만, 이토록 재미 없는 아이와 일 주일을 똑 달라붙어 지내야 함에 깊은 유감을 품고, 애써 꼬셔갖고 숙소로 돌아옴.

이렇게, 샌디에고에 도착한 첫 날도 무사히, 끝.


  1. 희안하게도, 지금까지 다녀 본 미국 서부 휴양지는 하나 같이 미술 작품 전시관들이 즐비했더라는;;; 휴양지에서 잘 팔리나?ㅡㅡ
  2. 뭔가 먹고 싶은데, 뭔지 모르겠다는건 대체로 먹고 싶다고 하면 안된다고 할 것 같은게 먹고 싶다는 말 (이를테면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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