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파이로리

이번주는, 작년부터 한 번 가보고자 눈여겨 보고 있던 파이로리 가든을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함께 다녀왔다.

파이로리는 1917년에 완공된 대저택으로, 원래는 사유지인데, 1975년에 집 주인이 역사적 기념물(?)로 기증하면서, 대중에게도 공개 됐다고 한다. 파이로리(Filoli)라는 이름은, 초대 주인의 모토였던

Fight for a just cause; Love your fellow man; Live a good life.

에서 첫 글자 Fi, Lo Li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산 한 중턱에 있는 파이로리 정원을 가기 전, 우린 점심을 먹기 위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주말 등산/등반객과 싸이클/바이크 타는 이들로 북적거리는 앨리스네 식당에서 브런치.

브런치 후 파이로리에는 사실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는데, 주차하고 내리자마자 사방을 채우는 꽃 냄새와, 동화책 처럼 이쁘게 가꾸어진 숲 속을 걸으면서 우린 셋다 몹시 흥분.

입구로 향하는 숲 속

입구로 향하는 숲 속

매표소 앞에서 셀카

매표소 앞에서 셀카

지난주에는 그렇게 신나게 사진을 찍던 개비 정, 오늘은 또 왠 일인지

개비 정: 아니야. 찍지 마.세.요.1

개비 정: 안 찍는다 그랬는데, 왜 계속 찍지?

멍 때리기

멍 때리기

그래서 계속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아빠 위주로 사진을 찍고, 개비 정 사진은 틈틈히 몰래 찍었더랬다.

꽃 냄새 맡고 다니기

꽃 냄새 맡고 다니기

파이로리 대 저택에 들어 서서는, 마침 저택 곳곳에 숨어있는 옛 주인장의 강아지 “토토” 인형(?)을 다 찾아서 스티커를 받는 이벤트 진행 중. 개비 정 키우기 9단에 입성한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훌.절™.엄: (개비 정), 토토랑 사진 찍을까?

개비 정: 오늘 (개비 정), 사.진.안.찍.는.다.그.랬.잖. …

훌.절™.엄: 그럼, 아까 그 언니가, (개비 정)이 토토를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어떻게 알지? 그래서 토토 다 찾았는데, 스티커 못 받으면 어떡해? 인증샷 찍어야지, 인증샷.

개비 정: (급 깨우친 표정과 목소리로)어우! 맞다. 맞네. 그럼 … 엄마 좀 찍어봐. 포즈하고. 포즈.

쥔집 강아지 "토토" 앞에서 깨우친 소녀 개비 정

쥔집 강아지 "토토" 앞에서 깨우친 소녀 개비 정

특히나, 자원봉사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미녀와 야수의 볼룸 장면을 연상케하는 대저택의 볼룸에서는

개비 정: 아빠~ 잡아줘. 여기서 댄스해야지. “벨” 처럼. 프린세스 벨.

아빠: …

개비 정: 아빠 알아? 프린세스 벨? 왜, 몬스터랑 댄스 하는 …

볼룸에서 "프린세스 벨" 댄스

볼룸에서 "프린세스 벨" 댄스

대저택 구경 한참 하면서, 참 대단하다며 감탄하고 있는데, 나와보니, “뒷마당”인 정원이 진면목.

밖에 나와서 휴식

밖에 나와서 휴식

유럽풍 성 마냥 깔끔하게 다듬어진 넓은 정원에, 튤립, 수선화, 목련, 라일락, 자스민 부터 각종 과일 나무까지 풍경은 물론 향까지 혼을 빼 놓는 광경이었다.

본격적인 가든 구경

본격적인 가든 구경

셋이서 신나게 구경하면서도,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나는 계속 이걸 다 가꾸는 정원서 인건비 걱정 …

모처럼 큰 맘 먹고 차에서 유모차를 안 내리고, 계속 개비 정 혼자 걸어다니게 한 오늘. 기특하게도, 안아 달라는 소리 한 번 안하고, 힘들다 싶을 때는 알아서

개비 정: 좀 힘들다. 여기 앉아서 쉬었다 갈까?

앉아 쉬면서 공부(?)하는 중

앉아 쉬면서 공부(?)하는 중

그렇게 세 시간을 넘게, 한 번도 안기지 않고 계속 정원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놀았는데도, 정원을 다 보질 못했다는;;;

튤립 정원

튤립 정원

과일 나무가 주를 이루는 과수원 영역(?) 옆으로는, 아직 꽃은 하나도 피지 않은 또 하나의 넓은 장미화원이 있었는데, 장미는 6월에 본격적으로 핀다하니, 6월에 손님들 오면 다시 한 번 가보기로 함.

숨바꼭질

숨바꼭질

그렇게 따듯한 햇살 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 구경을 하다가, 개비 정은 아직 힘이 팔팔 넘치는 데 반해, 훌륭한 절세™ 미녀 엄마와 나는 몰려오는 피로, 더위와 갈증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정원 옆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씩 마시기로 함.

꽃 분수대

꽃 분수대

둘이 각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먹는데 … 맹새코, 내 평생 그렇게 밍밍하다 못해 객관적으로 맛이 없는 음료는 처음 먹어 봄. 마치, 네스프레소 캡슐로 커피를 내리는데, 깜빡하고 캡슐을 안 넣어서, 지난번 내린 캡슐이 재탕 된 데에다가 얼음을 넣은 것 같은 맛. 아마 한 잔만 시켰더라면, 정말 뭔가 잘못 만든 줄 알고 다시 만들어 달라 했을 텐데, 두 잔이 다 그 모양이라 … 그냥 여긴 “커피”를 이렇게 만드는가보다. 담부턴 집에서 커피 싸오자. 하며 어쨋든 갈증은 해소하기 위해 마심.

개비 정 작가의 작품 세계

개비 정 작가의 작품 세계

그렇게, 우린 네스프레소 재탕 얼음물을 열심히 마시고 있는 사이, 옆 테이블 소녀가 개비 정에게 급 관심. 지 보다는 조금 어려보이는 아이가 동경(?)의 눈으로 바라봄에 우쭐 한 — 그리고 엄마 아빠가 어이 없어하며 계속 이상한 커피를 마시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 다소 지루해하던 — 개비 정은, 평소 같았으면 쑥쓰럽다며 쌩 깠을 텐데, 갑자기 데리고 뛰어 다니면서 같이 놀아줌.

10분짜리 새 친구

10분짜리 새 친구

원래 계획은, 시원하게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서 더 구경하는 거였는데 … 커피가 정말 충격적으로 맛이 없어서.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도 너무 늦어서. 오늘은 이만 시마이하고 집으로 향하기로 함.

이렇게, 돈이 좋긴 좋다 생각하며 대저택 정원 꽃 구경한 날도 무사히, 끝.


  1. 혼자, 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 버르장머리가 없는 개비 정은 요즘 존댓말 연습중인데 … 문화적 감성(?) 없이 그냥 “~요”만 붙여대니까, 더 듣기 싫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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