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방랑

이번주에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개비 정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별 다른 주말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계획 없이 이것 저것 함께 하며 오붓한 부녀 간의 주말을 보내기로 함1.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맛있는 브런치(구체적으로는 더치 베이비)가 먹고 싶어서, 개비 정 꼬셔서 같이 브런치를 만들어 먹기로 함. 이제는 개비 정도 제법 큰 언니가 되어, 재료 계량해서 그릇에 넣어주면, 꽤 잘 섞는다. 오늘의 더치 베이비는 내가 재료를 준비/계량하고, 개비 정이 (거의) 다 반죽 함.

브런치 준비를 도와주는 개비 정

브런치 준비를 도와주는 개비 정

요즘 한창 맛있는 자몽 하나 까서 자몽 에이드도 만들고, 간만에 여유를 가지고 커피도 핸드 드립으로 내리고! 마지막으로 더치 베이비는 급하게 따온 우리 밭 민트잎으로 장식! 이렇게, 모처럼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함께, 온 가족이 함께 아침 식사를 즐겼다.

이번 주말은 더치 베이비로 시작!

이번 주말은 더치 베이비로 시작!

아침 식사 후에는, 뉴욕에서 솔이 고모가 생일 선물로 보내준 — 그리고 아빠가 지난 밤 약 두 시간에 걸쳐 조립한 — “엘사 빵빵” 전기 자동차로 운전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겁 많은 개비 정이 잘 탈지 사실 걱정이었는데, 옆에 작은 라디오에서 버튼을 누르면 엘사 음악(Let it go)이 나온 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는 신나게 달렸다. 신기하게도, 오히려 코너를 도는 건 잘하는데, 긴 직선 거리는 유지를 못한다;;; 직선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서 차가 점점 한 쪽으로 기울어 간다는 …

솔이 고모가 보내준 생일 선물 - 엘사 빵빵

솔이 고모가 보내준 생일 선물 - 엘사 빵빵

엘사 빵빵 타고 동네 놀이터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자전거 타고 산책 가고 싶다고 해서, 집에서 길 건너에 있는 운동장 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운동장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꽃 구경도 실컷 하다가, 지난번 산책이 생각 났는지, “수박 주스”를 먹고 싶다는 개비 정. 캠퍼스 내 잠바 주스까지 산책을 가기에는 기운이 좀 없고, 마침 (진짜) 차에 주유 할 때도 됐고 해서, 개비 정 잘 꼬셔서 그럼 차를 타고 주스도 마시고 점심도 먹으러 가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가는데,

개비 정: 아빠 잠깐! 여기2 싯따운(역: 앉아)

아빠: ㄴㄴ. 아빠 뜨거워. 더워. 못 앉아. 가자. 얼른 가자.

개비 정: [개비 정] 힘들어. 쉬었다 가야되.

아빠: 이제 길 하나 만 건너면 집인…

개비 정: (이미 앉음) 물.

정지(STOP) 표지 왼쪽으로 길 한 번만 건너면 바로 집인데 …

정지(STOP) 표지 왼쪽으로 길 한 번만 건너면 바로 집인데 …

그렇게, 당돌한 개비 정이 하자는 데로 다 하고3, 겨우겨우 코스트코 가서 주유하고, 근처 잠바 주스에서 개비 정은 수박 주스, 나는 망고 주스를 먹었다.

잠바 주스, 수박맛

잠바 주스, 수박맛

개비 정: 아빠 쉐어(역: 나눠 먹자)

(나도 개비 정 수박 주스 한 모금 마시고, 개비 정도 내 망고 주스 한 모금 마심)

개비 정: 아빠 주스 맛 없다. [개비 정]꺼가 더 좋아. 아빠는 아빠 주스만 마서, [개비 정]은 [개비 정]꺼만 마실게. 아랐지?

아빠: (어이 찾는 중. 실제로 수박 주스가 더 맛있었다.)

개비 정: 아빠 뭐해? 핫도그 먹자. 배고파.

… 해서, 우린 — 내가 아는 한은 이 근처에 유일한 핫도그 가게 가 있는 — 스쇼를 가서 핫도그 하나씩 사 먹음.

핫도그

핫도그

핫도그 먹고 둘 다 기운이 펄펄 나서, 그렇게 스쇼에서 세 시간 가량 옷 구경, 신발 구경, 가구 구경하며 놀았다. 맛있는 것도 더 먹고, 개비 정 옷이나 장난감이나 이쁜 이불/가구도 많이 사주고 싶었지만, 곧 생일(6월 26일)인 개비 정이 너무 이것저것 많이 받고 버릇 나빠질까봐, 살살 잘 달래며 아무 것도 사주지 않고 놀았다.

어린이 가구 전문점을 놀이터 삼아

어린이 가구 전문점을 놀이터 삼아

예전에는 같이 쇼핑을 다녀도,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좀 놀다가 가자고 하면 잘 가고 그랬었던 개비 정. 물론, 지금도 바닥에 드러눕고 떼 쓰진 않지만, 이젠 조금씩 자기가 갖고 싶은 것, 그런데 내가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서러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핫도그를 먹은 후에, 개비 정이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하는데(솔직히, 나도 먹고 싶었다;;;), 같잖은 “교육” 차원에서 내가 안된다고 하니, 엄청 속상해 하면서 울던 개비 정. 아이스크림 안 먹을거지만, 아빠가 먹지 말라고 얘기를 한게 너무 속상하댄다.

정말, 사주는 것 보다는 안 사주는게 훨씬 더 힘든데, 무얼 위해 이렇게 애를 “훈련”시키겠다고 나도 고집을 부리는지, 그리고 과연 이렇게 “키우는”게 잘 하는 짓인지, 늘 고민이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되새기는 건, 개비 정은 한 20여년 함께 살다가 갈 사람이라는 거.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정처 없이 방랑한 날도 무사히, 끝.

요약

이동거리: 약 11.1 마일 (17.8 km)

  • 집 – 코스트코: 5.8 마일
  • 코스트코 – 잠바주스: 3.5 마일
  • 스쇼 – 집: 1.8 마일

경비: $26.95

  • 잠바주스: $9.98
  • 핫도그2개: $16.97

  1. 게다가 이번주에 노트북까지 수리 중이라, 블로그질도 임시 노트북으로 겨우겨우 하느라, 영 퀄리티가 떨어짐. 양해를 구하는 바 임.
  2. 집 바로 길 건너, 길 한 복판, 그늘 한 점 없는 벤치
  3. 이런 사소하고 귀찮은 것들을 져 줘야, 진작 중요할 때 제압 할 자신감이 생긴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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