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푸 우웩

체 했는지, 아침부터 토를 하더니, 학교 가서까지 토해서 결국은 조퇴 당하고 놀러 다녔다.

조퇴하고 산책하러 가는 길

조퇴하고 산책하러 가는 길

늑대 소녀 개비 정

한참을 저녁에 잘 자는가 싶던 개비 정이, 최근에는 또 저녁에 쓸데 없이 부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겨버렸다.

개비 정: 아빠~ 이불 다시 덮어 줘~

개비 정: 엄마~ 엘사(인형) 줘

개비 정: 엄마~ 아빠~ 불이 너무 밝아~

개비 정: 엄마~ 아빠~ 불이 너무 어두워~

… 이게, 한 두번이면, 그리고 이른 저녁 시간이면 그냥 귀여울 법도 한데, 새벽 두 시고 다섯 시고, 가리지 않고 한 밤 중에 자꾸 깨우고 불러대니까, 훌절™엄과 나는 다시 개비 정 잠 버릇 길들이기 모드에 돌입. 잠 버릇 길들이기 모드 … 라고 해봐야, 울던 말던, 2~3일 정도만 이를 악 물고 무시하고 자는 거1. 그러다 보면, 개비 정도 포기하고 그냥 푹 자는 습관(?)이 든다는 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잠과는 전쟁을 선포했던 개비 정 키우면서 훌절™엄과 함께 터득한 육아 스킬 중 하나.

그렇게, 잠 버릇 길들이기 모드에 돌입하면서, 저녁에 개비 정 재울 때

아빠: [개비 정]~ 저녁에 자다가 햇님 나오기 전에 엄마 아빠 부르면? …

개비 정: 안되.

아빠: 피피 푸푸 마려우면? …

개비 정: 혼자 갔다 와.

… 등, 준비된 반복 질의응답으로 신선하게 세뇌시키고서 우리도 잠 들었다.

그러다 한 참 자고 있는데 …

개비 정: 아빠! 푸푸 마려워!!!!!

졸린 눈 겨우 떠서 시계를 보니까 5:56 …

아빠: 혼자 가서 싸~

개비 정: 왔어~ 근데 아빠가 닦아 줘야되~

아직 개비 정에게 혼자 똥 닦는 스킬 하나 익히지 못한 내 부족한 육아를 원망하며, 침대에서 기어나와 반쯤 감은 눈으로 애 똥 닦는데 …

개비 정: 근데 … 배 아파.

보통 사람 같으면, 지 똥 하나 스스로 못 닦는 미니 인간이 변기에 앉아서 배를 움켜잡고 배 아프다 그러면 불쌍하고 딱하고 걱정 될 법도 하다. 그치만, 개비 정이 새벽에 붙잡으려고 평소에 별 소리 다 하는걸 들어온, 자다 말고 새벽에 억지로 끌려 나와 눈도 겨우 뜨고 변기 옆에 쪼그려 앉아 남 똥 닦고 있는, 지난 밤에 분명 부르지 않고 자게 해주겠노라고 약속 받은 아빠의 입장에서는, 그저 야속하고 얄밉기만 해서

아빠: 이제 푸푸 했으니까 괜찮아. 가서 자.

개비 정: 근데 …

아빠: 얼른 자라고. 아빤 잘거야.

하고 방으로 문 닫고 들어와 버렸다.

산책하다가 지쳐 잠든, 아프긴 아픈 개비 정

산책하다가 지쳐 잠든, 아프긴 아픈 개비 정

혼자 끙끙 거리고 흐느끼고 울면서 지 침대로 올라가는 개비 정 소리에 마음이 다소 동하긴 했으나, 잠 버릇 길들이는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 그냥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다 10분쯤 지났을까? 겨우 잠이 들까 말까 하는데, 계속 흐느끼며 울던 개비 정,

개비 정: 아빠~ 근데 … 입에서 뭐가 나와~~~

평소에도 코에서 뭐가 나온다며 불러 놓고서 가보면 큰 코딱지 팠다고 보여주거나, 손가락이 아프다고 해서 급하게 달려가보면 한 달 전에 다쳤던 상처 보여주면서 “늑대 소녀” 노릇했던 개비 정을 생각하며, 내 속에는 연민과 걱정보다는 괘씸함이 불타올랐다. 애써 분노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냥 무시했다. 얼른 자라고 화내고 야단을 칠 수도 있지만 … 그랬다가 괜히 더 크게 울면, 무시하고 잠들기 더 힘드니까.

그런데 끝날 줄을 모르고 한 30분 간 징징대며 울더니,

개비 정: 묻었어~ 닦아줘~ 아빠~~

… 하는 소릴 듣고는, 나도 참고 참던 분노가 터져

아빠: 왜! 뭐!

하고 소리 지르며 개비 정 방으로 당차게 달려 들어가는데, 도착해서 보니 침대 위에 토를 해 놓고서는, 그 위에서 몸에 묻지 않게 누워 보려고 애쓰다가 팔에 토가 묻어서 닦고 있는 개비 정 …

밀려오는 죄책감과 미안함, 이불을 보며 드는 짜증과 귀찮음, 그리고 그 짜증과 귀찮음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며 마음 속 깊이 드는 실망감 … 다 끌어 안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훌절™엄과 함께 애를 학교에 보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고민하다가, 괜찮은 것 같아서 준비를 시키고 보냄. 그러고서, 나도 연구실 앞에 막 도착해서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가방에서 울리는 전화기 …

버린 나날을 모아 만든 인생

그 길로 바로 자전거 돌려서 개비 정 다시 픽업하는데, 유모차 타고 집에 오는 길에 하나도 안 아픈 애 처럼 활짝 웃으면서

개비 정: 아빠~ 아빠한테 재밌는 얘기 해줄래.

아빠: 뭐?

개비 정: [개비 정]이~ 학교에서 있는데~ 입에서 푸푸를 우웩~ 했어! 웃기지?

… 하는데, 온 몸이 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듯 하면서 너무나 속상하고 불쌍하기도하고 서러웠다.

뭐가 그렇게 속상했는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데리러 학교로 돌아가는 내내, ‘오늘 일은 다 했네~’ 하며 짜증만 나던 내 자신이 창피해서 였을까? 그닥 아프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아이 때문에 하루를 버리게 된게 억울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많이 아플텐데도, 사랑스러워 보이려고 애쓰는 이 작은 인간을 내가 어찌 감히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부담감에서였을까 …

침대에 같이 누워서 보내는 하루

침대에 같이 누워서 보내는 하루

그렇게, 난생 처음 보는, 맥 없이 지쳐서 계속 누워만 있는 개비 정과 함께 하루를 보냄. 저녁에도 계속 힘들어하고 자다 깨서, 개비 정은 훌절™엄과 함께 엄마 아빠 침대에서 자고, 나는 개비 정의 작은 2충 침대에서 웅크려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개비 정은 잠에서 깼서도 힘들다며 침대에서 나오질 못하고,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길래, 학교 보내지 않고 나와 함께 하루 더 있기로 함. 그런데, 나도 계속 일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개비 정 데리고 연구실까지 가서 미팅도 하고 나름 최선의 시간들을 보냈다.

아빠 학교에서 지니 보는 중 …

아빠 학교에서 지니 보는 중 …

한참을 말썽도 부리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물 마시고, 샌드위치 먹고, 유튜브 보고 하면서 대견하게 기다리던 개비 정이, 아주 수줍고 조용하게, 나를 지긋이 부르더니

개비 정: 아빠 … 힘들어. 집에 갈래.

1년 전만 했어도, 이렇게 이도저도 아니게 맘고생 몸고생 하면서 보낸 이틀이 한 없이 억울하고 분통 터지며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이제는 나도 어느정도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걸까? 억울하지 않다고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나의 삶으로는 이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런 시간들이, 소위 “소중한 내 인생”을 소비하는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이처럼 아깝게 버려진 것만 같은 시간과 나날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은 내 인생을 이루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잃어버린 내 또 다른 삶을 아쉬워 하기 보다는, 지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는 수 밖에 없지 싶다.

이렇게, 아픈 개비 정 데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 날들도 무사히, 끝.


  1. 애가 없는 분들은 잔인하다 할 수 있지만, 여러 모로 사실은 그렇지 않음. 그리고, 간단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그렇지만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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