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개비 정이 감기가 걸려서, 원래 바닷가나 수영장을 가려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동네 마트에서 자전거 구경도 하고, 타컨에서 장난감 쇼핑도 하면서 좀 쉬기로 했다.
개비 정이 돌 때부터 유모차 겸용으로 타고 다녔던 4단 변신 자전거가 회생 불가한 상태로 고장나서, 사실 새로운 “언니” 자전거를 사주겠노라고 약속하고 데리고 나왔는데, 막상 집 근처 큰 마트를 가보니 재고가 너무 없는거.
그래서, 자전거는 “메일 맨(우체부 아저씨)”1한테 갖다 달라고 부탁하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린 타컨으로 향함.
개비 정이 아주 어려서부터 애착이 비교적 없는 편이라, 다른 애기들은 다 하나씩 있다는 “애착 인형” 같은 것도 없고, 잘 때도 인형 같은건 오히려 귀찮아 했었는데, 다 큰 것 같은 요즘 들어서, 간혹 어느 인형이나 물건에 난데 없는 관심을 쏟아 붓는 경우들이 있는데, 오늘의 당첨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토끼 인형.
개비 정이 두살 때 쯤이었을까? 토끼 인형을 괴롭히면서 놀다가 실수로 꼬리가 뜯어 졌던 걸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가 다시 붙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는지,
개비 정: (토끼에게) 꼬리가 많이 아팠지? 언니가 지켜줄게.
개비 정: 아빠~ 토끼는 속상하데 … 우리, 토끼 속상하지 말라고 장난감 사줄까?
… 하는걸 듣고는, 속으로 ‘이 년이 수작부리네 … ’ 생각하며, 속는셈 치고 장난감 가게를 데려 감.
그런데, 막상 장난감 가게를 들어가서는, 진심 토끼를 위한 뭔가만 찾는거;;;
개비 정: 아빠~ 토끼는 당근 좋아하는데, 여기 당근 장난감은 없는거 같아 … 어쩌지?
개비 정: (토끼에게) 음 … 물병은 어때? 이거, 언니도 써봤는데, 진짜 좋아. 필요할 수 있어.
개비 정이 좋아할만한 장난감들을 이리 저리 제안해줘도, 일편단심 토끼 생각뿐 … 욕심이 없는건지 그냥 장난감 살 생각이 없는건지, 결국은 내가 사고 싶은거 몇 가지 집어 갖고 나옴. 계속 토끼를 챙겨주는 개비 정이 뭔가 귀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해서, 나름 거한 제스쳐로,
아빠: 우리 스무디 먹으러 갈까?
제안했더니,
개비 정: 집에 쥬스 있잖아. 그거 먹으면 되.
아빠: 그건 집에 있으니까, 지금은 아빠가 스무디 사 줄게.
개비 정: 그럼 너무 아깝잖아 …
… 하는데, 기특하기도 하면서 왜 그리 불쌍해 보이던지;;;
결국은 작은거 하나 사서 빈 컵 달라고 해서 나눠 먹음.
개비 정: 아빠, 스무’티’ 진짜 맛있다, 그치? 근데 토끼 거는 없어. 토끼 속상하겠다 …
개비 정: (토끼에게) 토끼도 스무’티’ 먹고 싶어? 언니가 쉐어해(나눠)줄게.
그렇게 셋2이서 책 구경도 한참하다가 집에 와서는 같이 온라인으로 자전거도 사고, 새로 사온 책도 읽고, 장난감 가게에서 사온 야광별도 침대 위에 붙이고 놀면서 하루가 다 지나 갔다.
침대에 9시쯤 눕혀 놓고 나와서 한참 집안 일을 하다가, 개비 정 방에서 계속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들어가 봤더니, 토끼 잠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며 이불을 이리 저리 펴보기도 했다가, 베게도 뒤집어 봤다가 하느라 한 시간째 잠을 못 자고 있는거 …
평소 같았으면 어이 없고 화가 났을 텐데, 이젠 나도 아빠 4년차라 물러 터진건지, 아니면 하루 종일 코를 훌쩍 거리면서 토끼 챙겨주느라 지 장난감 하나 제대로 못 고른 애가 너무 불쌍했는지 … 그냥 웃으면서
아빠: 토끼는 [개비 정]이 잘 챙겨줘서 정말 행복하겠다. 토끼 잘 자게 [개비 정] 언니가 도와줘야겠네. 아빠는 나갈게. 문 열고 나갈까, 닫고 나갈까?
개비 정: 닫고
아빠: [개비 정] 안 잔다고 아빠가 또 올까봐?
개비 정: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임)
아빠: 아빠 안 올게. [개비 정] 놀고 토끼 재워 주다가 자고 싶을 때 자~
개비 정: 그래도 닫아. 챙피해
해서, 문을 닫고 나옴.
그렇게, 난 블로그 질을 하다가, 방금(11시쯤) 가봤더니, 고민 끝에 그냥 지가 품고 자고 있네 … (엘사랑 양은 언제, 왜 때문에 등장했는지 알 수 없음;;)
이렇게, 토끼를 향한 언니 근성을 발휘한 날도 무사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