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장기휴무 (3/4)

이 주 넘게 혼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

  • 혼자 있으니까 좋아요?
  •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네. 아내요.

혼자 있는건 당연히 좋다. 난 아주 오래 전(개비 정이 존재 하기도 전)부터 혼자 있는걸 좋아하던 사람이다. 특히나, 개비 정이 없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을 이룬 것 같아서 몹시 뿌듯해하고 있는 중이다. 개비 정 있을 때는 운 좋아야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가 “내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하루 24시간, 주말까지도 다 내 맘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 하루를 이틀처럼, 이 주를 한 달 처럼 알차게 보내고 있다.

보다 당연하지만은 않은 대답은, 둘 중 아내1가 더 보고 싶을 뿐더러, 아내가 정말로 보고 싶다는거.

만난지 1주년 되던 2013년 3월 1일,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었던 대학로 아비꼬

만난지 1주년 되던 2013년 3월 1일,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었던 대학로 아비꼬

훌륭한 절세미녀™와는, 효자동의 작은 차고에서 혼자2 산지 약 2년쯤 되던, 2012년 3월 1일에 처음 만났다. 맛있는 점심 먹고, 영화나 한 편 재밌게 보자고 만난게, 저녁도 먹고, 후식도 먹고, 식후 산책까지 하다가 저녁 늦게 각자 집에 갔다. 그 해 10월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지 반 년이 조금 더 된 사람한테, 평생을 같이 살아 보자고 제안을 했고, 다음 해 6월 1일에 결혼을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 혹은 생각이 없었는지 — 둘이 한 지붕에서 살기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나서, 아이를 가져 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렇게 2014년 6월에는 개비 정이 태어났다.

태어난지 몇 시간 안 된, 요다 같이 생긴 개비 정(밤콩이)

태어난지 몇 시간 안 된, 요다 같이 생긴 개비 정(밤콩이)

개비 정이 태어난지 3 개월이 채 안되서, 나는 박사 과정을 시작하느라 멀리 미국으로 혼자 오게 됐고,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8 개월을 훌륭한 절세미녀™, 그리고 개비 정과 떨어져서 지냈다. 물론, 그 때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는, 육아를 맡겨 놓고 혼자 와버린 미안함, 낯선 곳에 와서 느끼는 외로움 등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서 단순하게 “보고 싶다”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사실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 본지 이 년도 안 되었던 터라, 아직은 혼자 사는게 더 익숙해고 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헤어진지 6개월 만에 한국에서 잠시 재회했던 개비 정

헤어진지 6개월 만에 한국에서 잠시 재회했던 개비 정

그러다 2015년 4월,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개비 정이 미국으로 왔고, 우리 셋이 지금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2년 반을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에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한 동안은 개비 정 잠 재우는 일에 목숨 걸고, 또 한 동안은 기저귀 값 내고 월세 내는 일로 걱정하고. 내 평생에, 이런 역경과 고난을 한결 같이 함께 하면서, 저녁에는 서로 위로하며 잠들고, 아침에는 서로 한숨 쉬며 침대에서 기어나오는,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얹혀 사는게 아닌, 정말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인생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참 속썩이던 시절

한참 속썩이던 시절

그렇게 살다가, 이제 이 주 간 떨어져 지내보니, 정말로 누군가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 어떤건지 뼈저리게 알 것 같다. 단순히,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게 아니라, 없으니까 저녁에 어떻게 잠 자리에 들어야 할지 어색하고, 아침에 (편안하게 늦잠을 잘 지언정) 일어나는게 낯선 삶.

혼자 있는 것도 좋고,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맘대로 실컷 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 무엇 보다도 내 삶을 나와 함께 나눠 가진 이 사람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하루에 7시간만 일해도 좋으니, 6시간 밖에 못 자도 좋으니, 다시는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이렇게, 회상에 잠겨 내 새로운 인생을 곱씹어 본 날도 무사히, 끝.


  1. 훌륭한 절세미녀™
  2. 정확히 말하면 비만 고양이 오쌤도 함께 살았지, 참. 이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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