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키우기

최근 개비 정이 애벌레, 번데기, 나비/나방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마침 아마존에서 애벌레를 나비로 키울 수 있는 키트를 파는 업자가 있길래, 미친척 하고 주문해 봤다.

사실, 난 어렸을 때 밖에 나가서 애벌레를 잡아다가 집에서 많이 키웠던 것 같은데, (1) 번데기에서 나오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고, (2) 나오는 애들은 백발백중 나방이라 실망스러웠던 기억 뿐이라, 내가 나비를 키워 보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아 있었다.

첫 주(7월 19일 - 26일): 애벌레 시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자그마한 박스에 애벌레를 나비까지 키우기 위해 필요한 키트와 함께 애벌레 다섯마리가 들은 작은 플라스틱 통이 도착했다1.

박스에 담겨 오는 애벌레 다섯 마리와 각종 용품

박스에 담겨 오는 애벌레 다섯 마리와 각종 용품

애벌레가 들어있는 통은 바닥에 애벌레들이 번데기로 변할 때까지 먹기에 충분한 양의 음식(?), 그리고 나중에 번데기로 변태 할 때 매달릴 수 있는 부직포 같은 재질의 천장(?)으로 구성 되어있다. 즉, 다 번데기가 되기 전까지는, 통을 열 일이 없다 (설명서에 따르면, 열어서도 안된다).

처음에는 1cm 정도 되는 다소 귀여운 아이들

처음에는 1cm 정도 되는 다소 귀여운 아이들

안타깝게도, 우리집에 도착한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어서 도착. 아마도 진작에 죽은 것 같은게, 다른 애벌레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작은 크기.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죽은걸까?

죽어서 도착한 한 마리

죽어서 도착한 한 마리

어릴적 애벌레 키울 때는 한참을 기다려서 키웠던 것 같은데 … 통의 바닥에 있는 양분이 스테로이드 같은게 들은건지, 혹은 어렸을 때는 5~6일의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 처럼 느껴졌던건지, 애벌레들은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크기로 자라버렸다.

징그럽게 빨리 크는 애벌레들

징그럽게 빨리 크는 애벌레들

딱 1주일이 지나고 8일차(7월 26일) 아침에, 네 마리 중 가장 큰 한 마리가 천장에 달리더니, J 모양으로 몸을 굳히기 시작했다!

8일차 - 변태의 시작

8일차 - 변태의 시작

그리고, 그날 저녁 …

처음 생긴 번데기가 너무 신나는 개비 정

처음 생긴 번데기가 너무 신나는 개비 정

번데기로 변신하는 나비 애벌레를 관찰하면서 배운 몇 가지:

  • 나방 애벌레는 실 같은걸로 몸을 칭칭 감으면서 실뭉치 같은 번데기가 되는 반면, 나비 애벌레는 몸이 딱딱해지고 허물을 벗으면서, 나뭇가지 같은 번데기가 된다 (한국 길거리에서 먹는건 어느건지 모르겠네;;;)
  • 한 번 번데기로 변하고 나면, 시체처럼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수시로 파르르 떨면서 움직이기도 한다.

둘째 주 (7월 27일 - 8월 3일): 번데기(크리살리스)

첫 번데기가 등장한 후, 다음날 이어 두 마리가 추가로 번데기로 변신했다. 그런데, 뒤늦게 번데기로 자리를 잡은 애벌레들이, 천장에 자리 잡으려고 이리 틀고 저리 틀다가, 처음에 매달린 아이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1등(좌)의 말로(우) - 바닥으로 밀려남

1등(좌)의 말로(우) - 바닥으로 밀려남

… 이래서, 빨라갖고 좋을거 하나도 없더라는;;;

그렇게 세 마리의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신한 후, 나머지 한 마리는 자그마치 이틀을 더 애벌레로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 보려고 날마다 그렇게 애를 쓰더니, 결국에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자기 옛 친구의 번데기 옆에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거기서 누운채로(!) 변태.

나비 대기 모드

나비 대기 모드

동영상이나 사진, 글로 볼 때는 그저 “아, 애벌레가 열심히 밥 먹고 포동포동 살이 찌면 번데기로 짠하고 변신하는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 아이들의 여정을 보고 있노라니, 그게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교적 무난하게 천장에 매달린 채로 번데기가 된 두 놈도, 그 자리를 잡고 똑바로 매달리기 위해 몇번이나 실패를 거듭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가 다시 기어 올라 가던지. 그리고, 내가 지나치게 감정 이입하는 걸 수도 있지만, 천장에 엉덩이를 꽂은 채로 몸을 비비 꼬으며 압축(?)2 시키는 모습은 어찌나 괴로워 보이던지 …

마지막 주 (8월 4일 - 8일): 나비, 그리고 이별

번데기로 변한 다음에는, 그닥 관찰할게 없다.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아서, “혹시 번데기채로 죽었나?“싶던 와중에, 어느날 아침 무심코 살펴 보니, 두 마리가 나비가 되어 나와 있었다!

처음 등장한 나비!

처음 등장한 나비!

컵 뚜껑에 정상적으로 자리 잡았던 번데기는 멋지게 나와서 지 번데기 껍질 옆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데에 반해, 바닥으로 떨어졌던 “1등 번데기”는 나오면서 땅에 깔렸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결국,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갖다 댔더니, 지가 살고자하는 의지로 내 손가락을 붙잡아서, 똑바로 세워서 자리를 잡아주고, 그제서야 날개를 폈다. (역시, 1등해서 좋을거 없다는 …)

그렇게, 성공적으로 나비가 된 두 마리를 관찰하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우리가 보는 앞에서 번데기 하나가 더 열렸다!

번데기에서 갓 나온 나비

번데기에서 갓 나온 나비

번데기에서 애벌레가 나오는 과정/시간은 생각보다 빨랐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느 순간 번데기가 갈라지는 것 같더니, 그 위에 갑자기 나비가 앉아서 쪼글쪼글한 날개를 펴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간다.

계속 동영상을 찍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 장면을 카메라로 포착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세 마리의 나비는 무사히 탄생했지만, 마지막에 고생고생하며 바닥에서 번데기 되었던 아이는 끝내 나비로 탄생하지 못하고, 번데기가 새까맣게 변해가서, 그리고 이미 나비가 된 다른 세 마리가 자꾸 번데기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조심스레 망에서 꺼내서 밖에 놨는데 … 다음날 보니 마지막 놈까지 결국 나비가 되어 있었다!

죽은 줄 알았다가 끝내 살아 돌아온 나비

죽은 줄 알았다가 끝내 살아 돌아온 나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한 아이를 포함해 총 네 마리의 나비를 성공적으로 변태시키고서, 몇 일간 열심히 스펀지에 꿀물 타서 먹이며 키웠다. 개비 정, 처음 하루 정도는 무서워 하더니, 밥도 먹이고 쭈글쭈글했던 날개가 펴지면서 조금씩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나비들을 보며 점점 좋아하게 됐다.

사이 좋게 꿀물 먹는 아이들

사이 좋게 꿀물 먹는 아이들

그러다, 나비가 된지 3일째 되던날 … 짐승은 짐승인지라, 벌써부터 붕가붕가에 열중하기 시작하는 녀석들!

지나치게 사이가 좋아진 아이들 …

지나치게 사이가 좋아진 아이들 …

알을 낳기 전에는 자연으로 방생을 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하여, 붕가붕가를 목격한 바로 다음날, 대대적인 방생식을 갖기로 했다.

방생

방생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이 열리자마자 날아 갔는데, 한 놈은 끝까지 미련이 남았는지, 우리집 무궁화에 붙어서 해가 지도록 꼼짝도 않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다치거나 아픈건 아닌지, 약간 걱정도 했지만, 한참이 지나서 찾아보니, 녀석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없어졌다.

미련이 남았는지, 한참 머물다 간 녀석

미련이 남았는지, 한참 머물다 간 녀석

이렇게, 2017년 7월 19일부터 8월 8일까지, 약 3주 간의 나비 키우기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


  1. 함께 키워보자고, 개비 정 사촌들에게도 한 키트 선물해줬는데, 안타깝게도 그집 애벌레들은 다 죽어서 도착했더라는 …
  2. 애벌레가 엄청 길고 뚱뚱하게 자랐다가, 번데기로 변신했을 때를 비교해보면, 두께는 거의 그대로인데, 길이가 약 1/3로 줄어들어있다 … 아마도 몸을 녹여 “액화”시키면서, 뭔가 부피가 줄어드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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