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병원

원래, 이번 주말은 교회 대청소 일정이 있어서, 개비 정과 함께 일 손 도우러 구경 하러 갈 계획이었는데, 지난 2주 간 주말마다 밖으로 쏘다니며 너무 열심히 놀았던 터인지, 개비 정은 원인/이름 모를 병으로 한 주 내내 골골 거렸다. 해서, 이번 주말은 얌전하게 병원을 가보기로 했는데 …

병원 가는거 엄청 싫어하고, 병원 주차장이랑 비슷하게 생긴 곳만 들어가도 질색을 하며 거부하던 개비 정, 지도 이젠 병원을 안 갈 수가 없는 상태라는 걸 이해했는지, 오늘은 눈물 꾹 참으며 얌전하게 잘 따라와 줌.

예약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아뿔싸 — 이전 진료가 밀려서 15 – 20 분 정도 기다리랜다. 병원에만 오면 예민해지고 긴장하면서 부들부들 떠는 개비 정을 어떻게 잘 달래며 20분을 버틸지 걱정하고 있는데, 막상 개비 정은 아무렇지 않게 병원 소아과 옆에 구비된 놀이터로 터벅터벅 나가더니, 진료 시간이 될 때까지 신나게 잘 놀았다.

병원 놀이터에서

병원 놀이터에서

진료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사 선생님이 묻는 말에 특유의 교포 발음으로 “예압”하고 대답하고, 청진기/귀/입 등 한 단계씩 진료가 끝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웃음도 날리고, 귀에 넣던 약을 이제 안 넣어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나한테 하이 파이브까지 해가면서, 의아하고 안쓰러울 정도로 잘 있어줬다.

진료 전/후 - 주사기 득템

진료 전/후 - 주사기 득템

많이 아플텐데, 꾸욱 참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 번도 안울고 잘 있어준 개비 정을 안쓰러워하고 기특해하며 진료 마치고 나오고 있는데,

개비 정: 아빠, 해피 해?

아빠: 웅, [개비]가 잘 있어줘서 너무 해피해!

개비 정: 날씨 좋다. [개비] 쇼핑 갈래! 파스타도 먹을꺼얌.

아빠: …

개비 정: 국수 파스타 아니야. 맥앤치즈 먹을꺼야.

아빠: 그.. 그래;;

해서, 우린 좋은 날씨를 즐기며 밥 먹고 쇼핑하러 계획에 없던 스탠포드 쇼핑센터(스쇼)를 감.

튤립으로 새단장한 스쇼

튤립으로 새단장한 스쇼

스쇼에서 맥앤치즈 하면 당연 The Melt지만, 최근에도 갔었기에 — 그리고 난 도무지 맥앤치즈가 먹고싶지 않아서, 오늘은 CPK를 갔다.

CPK에서 점심

CPK에서 점심

개비 정 스쇼 액티비티 1: 물놀이

스쇼에는 분수대가 여러 군데 있다. 처음 왔을 때(2014-15년)는 캘리포니아가 가뭄이라, 분수대 같은거 못 틀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어서, 약간 폐허 느낌이 나는 분수대들이었는데, 올해는 가뭄은 커녕 여기저기 홍수 주의보가 나는 판이니 …

드레스 들고 물놀이

드레스 들고 물놀이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로, 개비 정은 기회만 있으면 분수대에서 뛰어 놀고자 한다. 처음에는 (개비 정이 엄청 아끼는) 노란색 “프린세스 벨” 드레스 젖을까봐 꼬옥 껴안고 조심조심 놀다가, 도무지 안되겠던지, 벗어버림. 다행히,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비가 약간 와서, 장화도 신고, 레인 코트도 들고 왔다는 거!

드레스 벗고 물놀이

드레스 벗고 물놀이

이렇게 개비 정은, 지나가는 언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장화 신고 레인 코트 입고 실컷 첨벙 거리며 놀았다. (다른 언니들은 장화도 안 신고 오고, 레인 코트도 입지 않아서, 부모들이 첨벙거리지 못하게 했다. 역시, 상대적 우월감만한 기쁨은 또 없다며 … )

개비 정 스쇼 액티비티 2: (주로 신발) 쇼핑

믿기 어렵겠지만, 개비 정은 말을 하기도 전부터 쇼핑을 몹시 좋아했다. 심지어, 내 기억에 개비 정이 처음 구사했던 문장 중 하나는 “어떤거 살까?” 였다. (물론, 곧 “너무 비싸”도 마스터 했다.) 수 많은 쇼핑 카테고리 중에서도, 유독 신발 사러 다니는걸 좋아하는 개비 정. 마침 오늘 스쇼에 있는 (평소에는 제법 비싼) 어린이 신발 전문점이 몇 가지 신발 떨이 세일을 하는 것! 세일 품목 중 개비 정 발에 맞는 사이즈 있는 구두가 딱 세 가지여서, 그 중 하나 골라서 사기로 함.

또 믿기 어렵겠지만, 다소 사치스러운 취향과 쇼핑을 좋아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개비 정은 (아직은) 제법 검소하다. 한참 이것 저것 구경하고 신어 보면서 좋아 하다가도, 막상 뭔가를 사고 싶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고 싶다고 할 때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제일 사고 싶은거 하나만 고르고, 나머진 다 (사자고 해도) 안 산다고 한다. … 감사하기도 하면서, 늘 의아한 일 중 한 가지 … (우린 그렇게 가르친 적은 없는데;;;) 그런데, 오늘은 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았던지 (아니면 이제 슬슬 사치스러운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지), 구두 세 개 중에서 두 개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둘 중에 하나를 못 고르고 망설이는 거. 그 때 마침 가게 언니를 통해, 지금 세일해서 한 켤레에 $20인데, 두 켤레에는 $30이라는 고급 정보를 입수! 그래서 가장 맘에 드는거 두 켤레 다 샀다.

새로 산 신발 신어보기

새로 산 신발 신어보기

개비 정 스쇼 액티비티 3: 꽃 구경

엄청 큰 튤립

엄청 큰 튤립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차를 타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커다란 튤립 구경.

코를 벌렁거리며, 꽃 냄새를 맡고 있는거랜다

코를 벌렁거리며, 꽃 냄새를 맡고 있는거랜다

집에서 요양

원래 병원을 가기로 했던 날인데, 얘기치 않게 신나게 놀아버린 개비 정. 그래도, 아픈건 아픈거라, 집에 오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남은 하루는 둘이 집에서 요양했다.

아빠랑 침대에서 티비 보기

아빠랑 침대에서 티비 보기

아빠랑 책상에서 공부하기

아빠랑 책상에서 공부하기

이렇게, 두렵고 떨렸지만, 오히려 안쓰럽고 기특했던 병원 가는 날도 무사히, 끝.

요약

이동거리: 약 3.8 마일 (6.1 km)

  • 집 – 병원: 1.2 마일
  • 병원 – 스탠포드 쇼핑 센터: 0.8 마일
  • 스탠포드 쇼핑 센터 – 집: 1.8 마일

경비: $110

  • 병원에서: $551
  • 점심: $25
  • 신발: $30

  1. 한국에 계신 분들은 “뭘했길래 병원비가 이렇게 많이 나와?” 하겠지만, 그냥 진료비 + 약값이다. 이 나라는 의료 보험 제도가 개떡 같아서, 보험료를 많이 내던가, 싼 보험 가입하는 대신 갈 때마다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된다. (참고로, 개비 정이 가입한, 병원 한번 가면 기본 $35 내야되는 “저렴한 보험”의 보험료는 약 $200/월이다 …)
공유 댓글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