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와 네바다의 경계선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운전해서 약 4-5 시간 떨어진 곳에 타호(Tahoe)라는 호수 중심으로 큰 스키장 단지(?)가 있다.
이 동네에서 세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한 번도 타호에 가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 몇 명이, 다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 당분간의 주말은 개비 정과 함께 보내기로 계약을 한 몸이라 … 하지만 꼭 가보고는 싶고 … 그래서 … 개비 정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첫째날(금) - 타호로 고고씽
물론, 5 시간(막히면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뒷 자리에 개비 정 태우고 혼자 운전 할 자신은 도무지 없어서, 같이 가는 친구 — 타호 악천후 운전 경력자 원하오의 차를 얻어 타기로 했는데 …
- 함정 1: 친구는 한 살 된(하지만 덩치는 개비 정보다 이미 큰) 래브래도, 아이비를 데리고 간댄다.
큰 개라면 자지러지는 개비 정을 열심히 꼬셔서, 겨우겨우 탑승했는데,
- 함정 2: 난 금요일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한 두 시간째 가던 길에 이야기 하다보니, 우린 월요일 오전 귀가랜다.
차를 얻어타고 온 마당에, 일정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기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순간 너무 당황해서, 급 곤란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내게 “괜찮지?“라고 묻는 친구에게 “어브 코스(당연하지)!“라며 당차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머리 속이 하얘졌었다.
다행히, 개비 정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깨서도, 비교적 장거리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지 생각에는) 무시무시한 개 한 마리가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 중간에 실컷 얻어 먹은 감자튀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우리가 묵게 될 오두막에는 다섯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 개비 정은 어마어마한 양의 눈을 보며 좋아하면서도, 뭔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느꼈는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방으로 직행. 피곤하셨는지, 바로 잠들어 버림.
둘째날(토) - Eat, play, sleep
밝은 아침, 자기 키보다도 높이 쌓인 눈을 발견한 개비 정은, 돌이킬 수 없는 흥분 상태로 돌변했다. 그 사이, 나는 눈 속에서 주저 앉고, 기어 오르고, 뒹굴고자 하는 개비 정을 보며, (비싸고 한 해 쓰고 버릴 것 같아서 안 샀던) 방수 바지는 반드시 있어야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리프트 입구에서 바로 방수 바지 부터 구매.
눈에 대한 흥분 못지 않게, 개비 정은 새로 구입한 바지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지라 … 20% 세일해서 약 $70 줬는데, 이렇게 만족도가 높을 수 없다.
- 방수바지가 없었더라면 뼛속까지 젖어서 분명히 뭐라도 걸렸을 것이고,
- 우려와는 달리, 방수 바지가 봉제선(?)을 자르면 두 치수 정도 늘어나게끔 유연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적어도 2년은 입을 것 같다.
같이 간 (애가 없는) 친구들은 스키를 타기 위해 리프트가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를 얻어타고 온) 우리는 리프트 근처에서 셔틀을 타고, 일단 볼거리가 좀 있을 것 같은 시내로 10분 정도 걸려서 갔다.
그런데, 볼거리고 뭐고, 개비 정은 오직 눈 속에서 뒹굴고 놀고 싶은 마음 뿐인지라 …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멋진 풍경도 보고, 훨씬 질 좋고 양 많은 눈 속에서 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로 알토 촌년 개비 정은, 길가 옆에 치워져 있는 눈 더미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길거리에 치워진 눈 속에서 놀다보니, 어느덧 스키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여기 스키장은 오후 네 시에 문을 닫는다), 곤돌라는 다음을 기약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데, 너무 신나게 놀았는지, 개비 정은 셔틀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10분 사이에 잠이 들어버렸다.
원하오 삼촌과 글로리아 이모 만나서는, (역시나 눈이 쌓여있는) 큰 호수의 남쪽 부근에 가서, 개비 정이 눈만큼이나 좋아하는 물가에서 잠깐 놀며, 하루를 마감.
저녁에는, 같이 간 글로리아 이모와 앨리스 이모가 준비해 온 샤브샤브로 마무리!
셋째날(일) - 곤돌라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눈 위로, 지난밤 사이 눈이 더 내려서, 새롭게 쌓인 “부드러운” 눈을 접한 개비 정은 또 아침부터 풀 흥분.
그래도, 어제 나름 굳게 다짐을 한지라 … 나는 개비 정 손 잡고, 두 블럭에 걸쳐 줄이 선 곤돌라 티켓을 사러 나섰다.
티켓을 사는 줄도, 티켓을 산 후 곤돌라를 타러 가는 줄도 모두 에버랜드 부럽지 않게 무시무시했고, 체감 대기 시간은 세 시간 정도 된거 같았는데, 막상 곤돌라를 타서 보니, 줄 선 시간부터 탈 때까지 약 50분 정도. 만 4세까지는 무료, 성인은 (곤돌라만) $59.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썰매 같은 놀거리들이 좀 있는데, 다 추가요금.
그래도 개비 정이 긴 줄 기다리는 동안 잘 참아줘서 (사실, 골드피쉬 먹느라 정신이 없었음) 예상했던 것 보다는 수월했다.
곤돌라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 풍경은, 충분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곤돌라 안 타겠다던 개비 정, 꼭대기에 도착해서 사방으로 눈 덮인 풍경을 보더니, 계단 밑으로 내려오자마자 엎어져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나 많은, 부드러운 눈을 보며, 어디서 무엇부터 하며 놀아야할지도 모르겠는 혼란에 빠졌는지, 그저 무한히 구르고, 던지고, 소리 지르고 …
그러다가, 눈 덮인 나무 밑에서, 이미 숙련되어 보이는 새 친구를 만나서, 한 수 배우기도 하고,
밥 먹을 시간이 되어서는, 안가겠다고 드러눕는 개비 정을, 질질 끌고 가서 겨우 싸구려 피자와 도리토스, 쿠키를 먹이고 불이나케 다시 눈 속으로 달려 나왔다.
밥을 먹고 나온 개비 정은, 이제 눈을 만지고 눈 위에 드러눕는 것 만으로는 눈과의 친밀감이 부족했는지, 아빠에게 깊이 깊이 구멍을 파라고 시키더니 (약 30분 동안…) 들어가서는, 슬금슬금 눈 속으로 스스로 파묻히기 시작;;;
너무 좋아하면서 계속 눈 속으로 들어가기에, 최대한 놀게 해주고 싶었지만 … 신발이 방수가 아닌지라, 동상이라도 걸릴까봐, 어깨 넘어로 들어가기 전에, 강제로 끌어 내야만 했다.
계속 눈 속에서 놀게 뒀다가는 몸살 걸릴 것 같아서, 눈도 거세게 내리기 시작해서, 그리고 무엇 보다도, 눈 속에서 계속 안고 다니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열심히 꼬셔서 겨우 곤돌라 타고 내려온 시간은 오후 두시.
약속한대로, “핑크핑크” 딸기 아이스크림 사 먹고, 이모 삼촌들 만나서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슬슬 집이 그리운지, 계속 집에 있는 엄마와 장난감들(미미, 주주)을 찾아서, 남은 시간은 반가운 캐리를 보여주고, 저녁에는 지난 밤에 먹고 남은 샤브샤브로 마무리!
넷째날(월) - 개비 고 홈
떠나는 날 아침, 타호 지역에 폭설주의보와 함께 눈이 펑펑 쏟아졌다. 교통 체증, 도로 상황 등 아무런 생각이 없는 개비 정은, 마냥 “새로운 스노우”가 좋다고 방방 날뛰고 …
우리들은,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떠나고자, 부랴부랴 준비해서, 오전 10시에 출발.
그런데, 길을 나서고 보니, 도로 상황은 상상을 초월 … 도로 양 옆으로 치운 눈은 우리 차(SUV)보다도 높이 쌓여있는데, 그 위로 새로운 눈은 끝없이 내리고 … 그 와중에 스노우 체인 검사한다고 교통 통제가 있어서, 차량들은 10 분에 1 미터씩 움직였다.
그 때, 타호 악천후 경력 운전 기사 원하오 삼촌이 신의 한 수로, 차가 덜 다니는 (그래서 오히려 길이 눈에 덮혀 아주 막혀있을 위험도 있는) 우회로 꺾음! 다행히, 아직 길이 완전히 덮혀서 막힐 정도로 새롭게 쌓이진 않아서, 고속도로까지 무사히 — 그리고 비교적 빠르게 이동 할 수 있었다.
그렇게, 50번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겨우 산 속을 벗어나고, 거세게 내리던 눈발이 빗발로 변해갈 때쯤, 통신사 재난 경보를 통해 받은 충격적인 소식! 우리가 약 30분 전에 지나온 길에 산사태가 나서, 이제 타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50번 고속도로 진입이 차단 됐다는 것! 우리가 내려오고 있을 때도, 산 비탈에 쌓여 있는 눈 더미들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차를 툭~툭~ 치긴 했었는데 … 조금만 늦었으면, 타호에 하루를 더 묵을뻔 했다.
(실제로, 같이 갔다가, 우회하지 않고 큰 길로만 줄서서 오던 알베르토/앨리스 부부는, 고속도로 진입을 못하고, 네바다로 우회해서 오느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 출발한지 12시간 후에도 타호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한다 …)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우리는, Sweetie Pies에서 점심을 먹으며 중간 휴식!
점심 이후로는, 홍수 재난 경보도 나고, 빗물이 범람해서 물이 30cm 정도 잠겨 있는 다리도 건넜지만, 어쨋든 큰 지연 없이, 출발한지 약 8 시간만인 오후 다섯시 반에 집에 무사히 도착!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은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가 준비해준 초호화 샤브샤브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개비 정 평생 가장 길었던 아빠와 단 둘 만의 시간 — 3박 4일 타호 여행은 (비교적) 무탈하게, 끝.
요약
이동거리: 약 465.8 마일 (750 km)
- 우리집 – 원하오 집: 8.6 마일
- 원하오 집 – 숙소: 210 마일
- 숙소 – 리프트 주차장: 6.1 x 4 = 24.4 마일
- 리프트 주차장 – 시내: 2.2 x 4 = 8.8 마일
- 속소 – 우리집: 214 마일
경비: $965.19
- 숙박비+공동비용: $544
- 방수바지/장갑(내꺼): $135.03
- 방수바지/장갑(개비 정꺼): $16.99 + $76.79 = $93.78
- 곤돌라 티켓: $59
- 첫째날 점심(McDonald’s): $15.71
- 둘째날 점심(Base Camp Pizza Co.): $36.42
- 셋째날 점심(Tamarack Lodge): $20.25
- 셋째날 아이스크림(Cold Stone Creamery): $7.72
- 넷째날 점심(Sweetie Pies): $5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