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인턴의 끝, 그리고 가을 학기 랩 복귀를 앞 두고 일주일 간 다 같이 샌디에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 첫 목적지는, 라호야 해변!
집에서 운전해서 가면 약 8 시간 거리인지라 … 못 갈 건 아니지만, 또 함부로 갈 거리는 아닌 것 같아 오랜 고민 끝에 우린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결정!
다만, 구림의 극한을 수 차례 거듭 보여준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피하고자, 굳이 산호세 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으로 떠났다.
이제 비행기 타는건 선수가 된 개비정, 한 시간도 안 되는 비행인데, 이륙 하기가 무섭게
개비정: 배고프다. 밥은 언제 나와?
아빠: 이건 잠깐만 타는 비행기라서 밥 안 줘.
개비정: 이모가 주스는 주지 않아?
아빠: 아 … 그건 좀 있다가 올거 …
개비정: 그리고 사 먹을 수 있잖아. 샌드위치 아니면 치즈 크래커?
아빠: … ;;; [개비정] 가방에 사탕 있어. 그거 먹어.
우리 동네도 날씨가 보통 좋은게 아닌데, 샌디에고는 그 이상으로 맑고 따듯한 날씨.
최대한 해변에 가까운 숙소를 잡아 본게 라호야 코브. 적잖이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에, 나름대로의 레노베이션을 한다고 했지만, 어지간 해서는 숨길 수 없는 낡은 화장실/배관/건물 구조 … 하지만 위치 하나는 끝내줌.
도착해서 짐 풀어 놓고 바로 동네 산책~
해변이 코 앞이긴 했으나, 일단 모래 사장에 도착하면 개비정 끌고 나오기가 쉽지 않으리란 걸 체득한 나와 훌.절.엄.™은, 해변을 등지고 맛있는 점심을 찾아 “시내”를 향함.
작은 시골 해변 + 부자 동네 휴양지에 걸맞는 라호야 시내는 아기자기한 식당/카페들과 으리으리한 부동산/미술 작품 전시관1이 오묘하게 섞인 분위기.
멕시코 국경에 바로 붙어 있어서, 멕시코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라호야! … 에서 우린 피자가 먹고 싶다는 개비정을 위해, 굳이 이태리 식당을 찾아서 감. 근데, 이 것이, 실컷 지 때문에 이태리 식당와서 피자 시켰더니 잘 먹지도 않고
개비정: 딴거 먹을래.
아빠: (이 악 물고 이쁜 목소리로) 딴거 뭐?
개비정: 몰라2. 아빠가 알아. 딴거.
아빠: 과자랑 아이스크림은 안되.
개비정: 아이스크림?
아빠: 안된다고 … 너 때문에 엄마 아빠가 피자 시켰 …
개비정: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자.
아빠: 피자 다 먹고 말씀 잘 들으면 생각해볼게.
개비정: (삐짐)
그렇게 분노를 삭혀가며 실랑이 밥을 먹여 놓고 … 부모로서 나의 자질을 의심하며 향한 곳은 보보이 젤라또! 사실, 별 생각 없이, 식당에서 바다로 향하는 길에 있는, Yelp! 평이 괜찮은 집인 것 같아 지나가는 길에 들렀는데, 그 맛은 정말 지금껏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 으뜸!
특히나, 개비 정이 고른 딸기맛이 가장 맛있었는데, 다 같이 한 컵에 담아 놓고 나눠 먹던 중, 갑자기
개비정: (스푼으로 딸기맛을 긁어 모으며) 딸기맛은 [개비정]이 골랐으니까 이제 [개비정]만 먹을게. 엄마랑 아빠는 엄마랑 아빠가 고른거 먹어. 아라찌?
아빠: 아빠도 딸기맛 먹고 싶은데?
개비정: 근데 벌써 많이 먹었잖아 …
아빠: 알았어, 그럼. 딸기맛 너 다 먹어~
( … 두어 숟가락 후 … )
개비정: (딸기맛 한 숟가락 내밀며) 먹을래? 이거 먹어봐.
아빠: 땡큐~
개비정: [개비정] 나이스 하지?
라호야 해변의 명물은 역시,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물개(바다 표범? 사자?)의 무리. 아이스크림을 다 해치우고 물개들이 우는 소리를 따라 바닷가로 향해보니 …
해변으로 내려 간 훌.절.엄.™은, 바로 앞에서 잠든 털복숭이 아기 물개도 보며 몹시 신난 중, 우리 개비정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
개비정: 아니야!!!! 안 갈꺼야!!!!
아빠: 귀여운 건데? 우리 샌프란시스코 피어에서도 본 …
개비정: 싫어!!!! 안 갈거야!!!!
아빠: 아빠 손 잡고 갈까?
개비정: (절레절레)
아빠: 아빠 안고 갈까?
개비정: (격하게 절레절레)
그리하여 개비정은 언덕 꼭대기 먼 발치에서만 잠깐 구경하다가 물개랑은 거리가 좀 있는 다음 해변가로 고고씽. 바다도 그닥 좋아하지 않고, 해변에 동물들도 별로 안 좋아하고, 파도는 기겁하며 싫어하는 우리 개비정이 해변에만 가면 넉 놓고 하는게 …
별로 있지도 않은 조개 껍데기—그것도 정말 손톱만하게 깨진 조각들—를 모아보겠다고, 한 시간 가까이 (행여나 파도가 지한테까지 갑자기 올까봐 바다 눈치 봐가며) 모래에 주저앉아 뒤척인 개비정. 아무리 내 딸이지만, 이토록 재미 없는 아이와 일 주일을 똑 달라붙어 지내야 함에 깊은 유감을 품고, 애써 꼬셔갖고 숙소로 돌아옴.
이렇게, 샌디에고에 도착한 첫 날도 무사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