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땡스기빙

땡스기빙 연휴를 맞이하여, 3박 4일을 연달아 집에 짱박힌 기나긴 주말. 남들 일 할 때 워낙 열심히 놀러 다니는 터라, 막상 남들 다 놀러 나올 때는, 붐비는거 걱정 되서 꼼짝을 못하겠더라는;;;

온 가족이 여러 날에 걸쳐 함께 늦장 부리며, 생각보다 많이 큰 개비 정, 그리고 그에 전혀 대처 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나는 모 처럼 휴일이라고 침대에서 늦게까지 나오질 못하고 뒹굴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놀아달라고 와서 깨우거나, 별 대책 없이 지 침대에 누워서 징징 거리며 울고 있었을 개비 정이, 지난 3일 간은 혼자 일어나서 씻고 옷 갈아 입고 (나름) 혼자 좀 놀다가 꺠우러 오더라.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침대에 누워 내 머릿 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왕 혼자 놀거면, 좀 더 오래 혼자 놀지;;;

왜 아무리 애가 크고 인간이 되어 가도 만족이 되지 않는걸까? 분명, 한 때는, 애가 지 방에서 혼자 밤새 자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다던 때가 있었고, 아침마다 씻기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씻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 언제가 됐든, 만족스럽지 않다. 그 수 많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결국 이런 만족되지 않는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되는걸까? 아니면, 내가 부모로서는 유별나게 이기적인걸까?

또 급성장하며, 감정적 발전이 한 발 앞선듯한 개비 정. 요즘은 깔깔 거리며 신나게 놀다가도, 조금만 싫은 소릴 하면 정색을 하면서 금방 울어버린다. 울기만하면 다행이고, 걸핏하면

개비 정: 아빠 때문에 속상해!

개비 정: 아빠 미워!

… 따위, 지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는 말을 지껄이면서, 계단으로 달려가 앉아서 분노를 어쩔 줄 모르겠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써댄다.

그렇게 몇 분을 뒀다가, 계단으로 가 보면

개비 정: 허그가 필요해 …

… 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달려 드는데, 혼을 내야 되는지, 일단 안아서 달래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불쌍한척하며 품으로 달려 들면 혼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수를 쓰는건가 싶다가도, 정말로 자기 안에 있는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나라고 딱히 분노에 대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닌지라, 애한테 막상 해줄 얘기는 없는거;

이 블로그를 시작하며, 육아 따위 개나 줘버리고, 난 걍 작은 인간 하나 데리고 다니며 놀아 보자는 심보로 지난 43주를 지내왔는데 … 일단 낳아 놓은 애를 주워 담을 순 없듯, 아빠가 되어야 하는 내 운명도 피할 순 없나 보다.

이 보다 절망적일 순 없겠다 싶으면서도 … 하고서 뭔가 대비 되는 희망적인 내용을 쓰려고 키보드 앞에 10분 가량 앉아 있었네. 솔직히, 그냥 절망적인다. 나는 아빠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아직 1도 되지 않았는데, 내 애는 네 살이 다 되어 가고, 온갖 육체적/감정적 필요들이 늘어만 간다. 난 당장 내 몸과 마음 하나도 감당이 안되는데 말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둥바둥 한다고 해서 애가 엄청 잘 크거나 완전 망하는 것도 사실은 아닐테지만 — 그냥, 이제는 내 인생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사는 인생일 수 밖에 없어졌다는게 억울하고 싫다. 세상에 정말 하고 싶은 고민,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나름 답을 찾을지도 모를 의미 있는 고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 ‘어떻게 아빠가 되지?’ 따위 고민으로 체력을 소모해야한다는 불가피한 현실이 적잖이 띠껍네.

이렇게, 있지도 않은 육아 철학을 반성해 보는 날도 무사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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