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장기휴무 (2/4)

지금 당장 원하는 만큼의 돈과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할래?

우리 부모님과 누나 둘, 다섯 식구가 하나 둘씩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 시작하던, 2010년대 초쯤, 가깝게 지냈던 작은 누나가 오랜만에 만나서 던졌던 질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릿 속으로 온갖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들이 스쳐 지나 간다. 말도 안되게 비싼 차도 사고, 지나치게 큰 초호화 주택을 사야지.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집안 일 대신 해줄 사람들도 잔뜩 고용하고 … 어딘가 멋진 이국적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고민하다보니, 막상 하고 싶은건 딱히 없었다. 비싼 차와 초호화 주택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에 그걸 갖는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 것 같진 않았다. 돈이야, 당연히 풍족하고도 남을 만큼 많으면 좋겠지만, (그 당시로) 25년 평생 빈곤층에 가깝게 살면서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던 터라, 이제 와서 많이 갖는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 당시 석사 과정에 열중하던 내가 정말 원하는 건 훌륭한 연구를 해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보람을 느껴보는 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든 시간이든, 주어지는 만큼 — 그것이 많든 적든 — 지혜롭게 분배하고 활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당장 그렇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솔직한 답은

그냥 지금 사는대로 계속 살거 같은데?

… 였다.

그 뒤로도 가끔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그리고 매번, 내 답은 같았다.

개비 정이 태어나기 전 까지는.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던 내 인생이, 개비 정 이후로는 불가능해졌다. 돈 없을 때 끼니 좀 거르면 되던 것이, 이제는 당장에 기저귀를 사고 분유든 이유식이든 사야하는 처지가 됐고, 내가 맡은 일의 완성도를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희생했던 밤잠이 이제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밤새 울어제끼는 작은 인간에게 빼앗겨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장 잠이라도 조금 더 자고 싶어졌다. 늘 내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개비 정과 떨어져 보내는 시간들도, 개비 정이 태어나기 이전에 혼자 지내던 시간들과는 달라져 버렸다. 내가 고민해야 하는 일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모든 것이 내 의지, 바램, 노력과는 무관하게 변해 버렸다.

…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멋지게 말하면서 마무리 하고 싶지만,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개비 정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이 변화에 대한 이질감과 반발심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이렇게, 부모 됨의 억울함을 새삼 호소한 날도 무사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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