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금요일은 개비 정 학교 선생님들 교육 받으러 가는 날. 즉, 학교 문 닫고, 개비 정은 아빠와 함께 금/토 이틀을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주말 …
원래 금요일은, 코스트코에 가서 장만 봤다가, 집에 얼른 들어와서 늦장 부리며 뒹굴고 시간 떼울 계획 이었는데, 막상 나가니까, 날씨도 너무 좋고, 학교 안 가고 놀러 나온걸 마냥 즐거워하는 개비 정 얄미워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주간 숙원 사업으로 미루고 미루었던, “돈 주고 개비 정 머리 자르기”에 도전을 해보기로 함. (집에서 가까운 타컨1에 Snip-its라는 어린이 미용실이 있어서, 언젠가부터 계속, 개비 정 한 번 데리고 가고자 맘 먹고 있었다.)
작업은, 코스트코를 나서며 시작 되었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개비 정에게,
아빠: 타컨 가서 햄버거 먹을까?
개비 정: 밁쉑(역: 밀크 쉐이크)도.
아빠: 안되. 엄마한테 혼나. 타컨 가면 언니 공주 머리 자르는거 있는데 …
개비 정: (급정색) 머리 안 잘라. 아빠, 머리 잘라 하지마.
아빠: ㅇㅇ. 자르지마. [개비]는 베이비니까, 져스트 룩(보기만)하자. 져스트 룩 하고 햄버거 먹자.
개비 정: 가면 공주 있어?
아빠: (자신감/확신 제로) ㅇㅇ. 공주만 보고 햄버거 먹으러 가자.
그리하여 일단은 데려 가는데 성공.
나의 기대는, 된장스럽기 짝이 없는 개비 정이, 일단 어린이 미용실 비주얼을 경험하고 나면, 오히려 머리를 자르고 싶어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들어서고 나니 어색한지 오히려 강력히 거부하는 개비 정. (당시 머리 잘리고 있는 어린이 언니들이 그닥 공주스럽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개비 정: (울먹이며) 햄버거 먹으러 갈래.
아빠: (급하게 가까운 거울을 들이대며) [개비] 공준데?
개비 정: (익숙하고 반가운 본인 얼굴에 심취해서) [개비] 공주야. [개비] 언니지? 언니는 머리 이쁘게 자를 수 있어.
아빠: ㅇㅇ. [개비] 공주지? 우리 그럼 머리 함 잘라 볼까?
개비 정: (급정색) 머리 안 잘라. 아빠, 머리 잘라 하지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용실 카운터 보는 언니한테, 예약 많이 밀렸냐고 물었더니, 원래 예약은 안되고, 지금 대기자 명단에 이름 올리면, 약 40-45분 기다려야한댄다. 그 말을 듣고, 없던 총명함을 발휘하여:
아빠: (최대한 진지하고 심오하게) [개비]는 공주니까, 공주 밁쉑이랑 햄버거 먹고 와서 이쁘게 머리 잘라 볼까?
개비 정: 밁쉑?
아빠: 머리 자르면.
개비 정: 밁쉑?
아빠: 머리 자르면.
(… 약 10회 반복)
개비 정: 아빠 [개비] 머리 잘라 하지마. [개비] 공주니까, 밁쉑 먹고 와서 머리 자를거야. (역: 니가 자르자고 해서 자르는게 아니라, 난 원래 공주라서 안 그래도 오늘 머리를 자르려던 참이었단다. 그러니, 얼른 가서 밀크 쉐이크를 먹고 와서 머리를 자르자꾸나.)
그리하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점심 햄버거(와 밀크 쉐이크)를 먹으러 같은 타컨에 있는 고츠로 고고씽.
고츠에서, 더블 치즈 버거, 고구마 후라이, 그리고 초코/바닐리 밀크 쉐이크를 나눠 먹고 있는데, 20분 전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영 못 먹는 개비 정. 그러다가, 내가 내 햄버거를 다 먹고, 고구마 후라이 반쯤 먹었을 때,
개비 정: [개비] 피피(역: 소변)하고 다시 와서 밁쉑 먹을래
… 솔직히, 개비 정과 둘이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식당에서 먹다 말고 중간에 화장실 가야할 때다. 나도 먹다 말고 화장실 자주 가는 편이긴 한데, 개비 정도 만만치 않은지라.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짐/먹는 중인 음식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평소에는 주변 서버를 불러서, 우리 잠깐 화장실 다녀 와야하니, 자리 좀 봐달라고 이야기 하고 가는데, 왠지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서, 개비 정이 먹던 중인 햄버거, 밁쉑, 고구마 후라이를 그대로 두고, 약 10 미터 떨어진 화장실로 얼른 뛰어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나와보니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 되고, 다른 사람이 이미 앉아있는거;;;
개비 정: 어? [개비] 밁쉑 올던(역: 끝난거) 아닌데에에에에엥 …
개비 정은, 갓난 장이 때부터, 본인이 아직 먹고 있는 음식을 식당 서버가 묻지도 않고 치워버리는 것에 대한 큰 상처들이 몇 번 있어서, 이 사안에 안 그래도 몹시 민감한터라, 난 다급하게 서버 불러서, 최대한 점잖게 어떻게 된건지 물음. 그랬더니, 다행히도,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본인이 모르고 우리 간 줄 알고 치웠다며, 밀크 쉐이크 새거 하나를 다시 주겠다고 함. (사실, 개비 정은 밀크 쉐이크를 받고도, 본인이 먹던 햄버거와 후라이는 어디에 있냐며 몹시 서럽게 찾았지만, 난 밀크 쉐이크 새로 받은 것 만으로도 만족.)
가슴 아픈 점심을 뒤로하고,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미용실로 이동.
안 그래도 점심 뺏겨서 나빴던 기분, 엄청 삐친 얼굴로, 처음에는 한바탕 울기까지 하며 머리 잘리기에 임한 개비 정. 그래도, 쎈 고집에 반해, 한 번 약속한건 나름 잘 지키고자 노력하는 편인지라, 밀크 쉐이크 부둥껴 안고 가만히 잘 앉아 있어 줬다.
그러다, 거울 속에 비친 본인의 깔끔해져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씩 마음이 풀리며 미소도 짓고, 계속 거울 보여달라고 함. 게다가, 미용사 이모가 머리 자르고 나서, 사탕도 주고, 머리도 이쁘게 묶어서 리본 해주고, 팔찌 장난감 선물까지 줘서, 미용실에서 나올 때에는 활짝 웃으며 신나게 뛰쳐 나옴.
그리고, 미용실에서 뛰쳐나오며,
개비 정: 아빠~ [개비] 헤어 컷했으니까, 밁쉑도 먹고, 사탕도 머고, 리본도 하고, 팔찌도 하고, 공주도 되고, 많이 해.
아빠: (뿌듯, 보람, 사랑) …
개비 정: 헤어 컷 했으니까 이제 장난감 구경 할래.
아빠: (ㅆㅂ, 뭐?)
타컨에는, 안타깝게도, 개비 정이 가장 즐겨 방문하는 장난감 가게도 있는지라 … ‘내가 딸 하나 참 잘못 키우는구나 … ’ 싶으면서도, 사실 나도 장난감 구경이 하고 싶어서, 금요일은 그렇게 마무리.
요약
이동거리: 약 11.8 마일 (19 km)
- 집 – 코스트코(레드우드): 5.8 마일
- 코스트코 – 타운앤컨트리: 4.9 마일
- 타운앤컨트리 – 집: 1.1 마일
경비: $52.75
- 점심(Gott’s): $22.75
- 머리(팁 포함):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