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를 시작한지 이제 한 달 지났다. 지난 한 달 간, 블로그를 본 몇몇 지인들로부터 받은 코멘트는 “모범아빠”(주로 엄마들)부터 “공공의 적”(주로 아빠들), “너무 행복해 보인다”(주로 애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 블로그의 취지, 육아에 대한 나의 (다소 강한) 입장, 그리고 본질적으로 편향된 선택으로 인해 블로그를 통해서는 잘 전달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불량한 아빠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와 내가 부부로서 지낸 시간 중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은, 첫날밤도 아닌 둘째날 밤이다. 개비 정 태어난 다음날 밤 — 이른바 “ㅆㅂ둘째날“1. 밤새 원인 모르게 울어 재끼는 작은 인간을 어설프게 어깨에 걸쳐 안고, 새벽 네 시쯤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붙잡으며 병실 앞 복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내가 딸에 대해 처음 가진 감정은, 연민이나 사랑이 아닌 원망과 미움이었다.
남들은 애가 태어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울어 재끼는 갓난쟁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디서나 들어왔던 “자녀를 향한 부모의 참되고 자연스러운 사랑” 따위 난 느껴보지 못했다. 모두가 당연하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내 자녀를 위한 무한한 사랑이, 내 속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음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개비 정이 태어나고 첫 몇 주 간, 사람들이 나를 보며 “딸바보 같다”고 했을 때 그렇게 화가 났었다. 나에게 딸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거나 기대하는 말들이 나로 하여금 감정적 장애가 있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같이 살다보니, 정도 들었고, 이제 이 작은 인간의 습성에 점차 적응을 해가며, 내 나름대로 공존하는 방도를 터득하긴 했지만, 사회적 기대감과 내가 느끼는 감정 간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나는 (꽤 자주) 울어 재끼고 떼를 쓰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연민 보다는 분노가 앞서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랑이 결여된, 마치 불량품 같은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하고 두렵기도 하다.
아빠와 나
다른 글에서 이미 이야기 했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사회가 기대하는 “아빠”로서의 “육아”를 포기하는 내 결단의 산물이다. 그 취지는,
내 사랑하는 딸과 주말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지
… 보다는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으니까, 뭐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주말을 보내야겠다
… 이고, 한 편으로는 지난 32개월 간 단 하룻밤도 맘 놓고 편안히 잠을 못 잔,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과 저녁에는 틈틈히 공부까지 하는 훌륭한 절세미녀 엄마™에게, 주말 중 하루라도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면서, 우리 가족을 지켜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 간의 글들을 다시 읽다 보니, 그런 취지는 전혀 전달 되지 않고, 오히려 (다소 혐오스러운)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식의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육아 일기”가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물론, 시작했을 때부터, 결과물은 이렇게 되리라는 걸 몰랐던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DAM의 깊은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아닌 저자(나)의 입장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
회복과 안정
내가 이 곳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아직은 어색하고 마음 속 깊이 원망스러운 내 딸과의 관계 회복/형성이다. 그러다보니, 이 곳의 기록은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예를 들어, 최근 스키장 여행의 현실은 끝 없는 타협과 감정적 씨름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같이 간 원하오와 글로리아 부부는 나와 개비 정을 보며, 어쩜 그렇게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모든 일에 협상을 해야 하는지 신기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다. (나는 스키는 안 타지만) 왕복 10 시간을 넘게 이동해서 다녀온 스키장에, 썰매나 스케이트 같은 (내가 진심 좋아하는) 온갖 놀이 시설이 다 있었지만, 개비 정과 함께 가는 바람에 나는 고작 하루는 길거리에 치워진 눈더미 속에서 네 시간 뒹굴고, 겨우겨우 곤돌라 한 번 타고 올라가서는 썰매와 스키 구경만 하다 왔다. 하지만, 그 3박 4일 간의 감정적 전쟁을 치르고 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왜 이렇고 살지?“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내가 용납할 수 있는 경험, 혹은 내가 깊은 고민 끝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개비 정 입장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독자가 보게 되는 것은, 우리의 “편집된” 추억 뿐이다.
편향적 선택
지난 한 달간,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좋은 추억을 만들고, 관계를
회복/형성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직 발달 중인 개비 정일 때는 더 그렇고!)
개비 정과 감정 상하는 일이 있고 나면, 내 자신을 진정 시키고, 아빠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다시 말해, 조금이라도 힘들고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면, 기록 따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꼭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이 곳에는
(적어도 사진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만 보여질 수밖에 없다.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땐 아예 기록할 생각을 못하니까.
훌륭한 아빠들에게
세상에는 정말 훌륭하고 본 받아야 할 아빠들이 많이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헌신할 준비가 된 아빠들. 아이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아직 세상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아이를 불쌍히 여길 줄 알며, 바른 길로 이끌고 세상에 적응하도록 진정한 “양육”을 하는 아빠들.
나는 분명, 그런 아빠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아빠가 되고자 하는 욕심도 이젠 없다. 다만, 놈팽이 처럼 주말에 놀러 다니면서, 마치 대단한 육아나 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는 이 곳이, 세상의 많은 훌륭한 아빠들에게 행여나 오해나 부담의 소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
내일은 내 만 31번째 생일이다. 그런데, 지금 내 가장 큰 소원은, 아까 8시에 자러 올라가서 두시간 반이 지난 지금(10시 반) 잠든 개비 정이, 오늘 밤만이라도 안 깨고 아침 7시까지만 푹 자는 것이다.
이게, 내가 사는 현실이다.
- 간혹 궁금해하면서도 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린 2013년 6월 1일에 결혼했고, 개비 정은 2014년 6월 26일에 태어났다. ↩